※ 맨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미국에 온 지 3년째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든 걱정은 “한식을 못 먹으면 어쩌지”였습니다. 김치찌개 냄새, 갓 지은 밥 냄새, 엄마가 해주던 나물 반찬들. 텍사스의 작은 동네에서 그 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전혀 다른 이유로 한식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재료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동네에는 “오마트”라는 한인 마트가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K푸드 인기 덕분인지 한국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 손님들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고추장, 된장, 참기름, 웬만한 건 다 거기서 구할 수 있습니다. 정말 특별한 재료가 필요할 땐 오스틴에 있는 H마트까지 차로 40분을 달려가면 됩니다. 국산 김, 떡볶이떡, 냉동 만두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걱정했던 “재료를 못 구하면 어쩌지”는 기우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먹던 거의 모든 음식을 여기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다른 데 있었습니다.
진짜 힘든 건 “매일 해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살 때는 이런 고민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배달앱을 켜면 됐습니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으면 근처 식당에 시키면 됐고, 새벽에 야식이 당기면 30분이면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요리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냥 시키면 됐으니까요.
여기서는 다릅니다.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장을 봐야 하고, 재료를 씻고 다듬고, 불 앞에 서서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이민 초반 한두 해는 그것도 나름 낭만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만든 한식이 식당보다 낫지” 하면서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삼시세끼를 다 차려 먹진 않습니다. 대신 다른 부담이 생겼습니다. 바로 딸의 도시락입니다. 딸이 학교 급식을 잘 안 먹어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들려 보냅니다. 전날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잠들고, 아침에 손님 머리 자르러 나가기 전에 도시락부터 싸는 하루가 3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훨씬 힘듭니다. 매일 다른 메뉴를 고민해야 하고, 아이 입맛에 맞으면서도 너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걸 찾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리운 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배달앱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김치찌개는 얼마든지 끓여 먹을 수 있습니다. 재료도 다 있고, 레시피도 압니다. 그런데 한국의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 같은 건 없습니다. 새벽 두 시에 라면이 먹고 싶어도, 비 오는 날 나가기 싫어도, 앱 하나로 뭐든 해결되던 그 시스템이 여기엔 없습니다.
미국에도 도어대시(DoorDash), 우버이츠(Uber Eats) 같은 배달 앱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근처에 한식당 자체가 거의 없고, 배달비만 5~10달러씩 붙는 데다 팁까지 더하면 배달비가 음식값의 절반에 가까워질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배달 시간도 한국처럼 30분이 아니라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게 보통입니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빠르고 싸고 다양한 배달’은 여기선 존재하지 않는 사치였다는 걸, 저는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진짜 그리운 건 결국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편리함’이었습니다. 언제든 시킬 수 있는 배달, 새벽에도 문 앞에 도착하는 배송,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한 끼가 해결되던 그 시스템. 그게 얼마나 특별한 건지 여기 와서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한식을 해먹습니다
물론 불평만 하려는 건 아닙니다. 3년째 거의 매일 부엌에 서 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저는 아직도 요리를 잘 못합니다. 같은 찌개인데도 어떤 날은 맛있고 어떤 날은 밍밍하고, 여전히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만듭니다. 3년이면 좀 손에 익을 법도 한데, 아직도 요리는 힘듭니다. 언제쯤 저도 남들처럼 쉽게 쉽게 뚝딱 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다만 가끔, 도시락 메뉴 고민에 지치고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엔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아, 배달의민족이랑 쿠팡이츠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리운 건 한식이 아니었습니다. 배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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